파티마, 시리아
"제 몸은 다리 한쪽 그 이상이에요."
“한밤중에 우리 집이 공격을 당해서 저는 유산탄 부상을 입었어요. 두 다리를 너무 심하게 다쳐 한쪽 다리는 결국 절단을 해야 했어요. 다리를 절단했다는 사실은 시리아 다라에 있는 야전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후에야 알았죠.
아이들을 다시 보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장애가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은 한쪽 다리가 없는 저를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이었어요. 이제 겨우 18개월인 막내 아들은 저를 두려워하더군요. 제가 늘 안아주고 먹여주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저를 보던 날 아이는 제가 무서워서 이모한테 가더라고요.
시리아에서 절단 수술을 받은 뒤에는 국경 건너 람사(Ramtha)로 가서 몇 차례 수술을 더 받았어요. 지금은 의족 착용을 위해 물리치료를 받고 있어요.
제게는 9살, 8살, 1살 반 이렇게 세 아이가 있어요. 제가 이곳 요르단 람사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들은 여전히 시리아에 있어요. 빨리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몸 상태도 좋아지고 나날이 더 기운도 나요. 하지만 스스로 걷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만큼 기운을 회복한 뒤에 집에 돌아갈 거예요.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데요. 제 몸은 다리 한쪽 그 이상이에요. 아이들을 위해 저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해요. 절망에 굴복할 수는 없어요. 부상 때문에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을 거예요.
아이들에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돌아갈 거예요.”
카카 왈리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출신 카카 왈리(20세)는 3년 전부터 니제르로 피난해 있습니다. 카카는 디파 시내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임신 중이었는데, 온몸에 열이 나고 몸살이 났어요. 그러더니 두 눈이 노랗게 변하는 거예요. 체티마리에 있는 인근 보건소에 갔다가 디파로 이송됐어요. 보름 동안 의사 선생님들의 치료를 받았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심리적인 지지도 받았어요.
하지만 결국 저는 아이를 잃었어요. E형 간염이 무엇인지 듣게 되었고, 어떻게 그 병을 예방할지도 들었어요. 손 씻기 같은 위생 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는 마을에서 여자들끼리 서로 이런 정보를 나눠요.
지금 저는 그때보다 한결 나아졌어요. 하지만 지금도 2주마다 진찰을 받으러 와서 모든 것이 괜찮은지 확인해요.”
카마라 브룰라예
국경없는의사회 마취과의
“우리는 위독한 상태 속에 온 카카를 집중치료실에 입원시켰습니다. 카카는 혼수 상태 속에 유산을 했고 이 때문에 심한 출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카카를 많이 걱정했습니다. 보통 그런 환자들은 호흡 보조가 필요한데 디파에는 그런 의료 장비가 없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카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카카는 결국 이겨냈습니다. 저는 카카의 강인함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니 정말 흐뭇합니다.”
송경아 간호사
남수단
"제가 있었던 남수단 프로젝트에서는 의료 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으려면 기본 3~4시간은 쨍쨍한 햇볕을 받으며 걸어야 병원에 닿을 수가 있었습니다. 총상 환자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에 도착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12시간, 심지어 이틀에 걸쳐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치료받고 회복되는 과정을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값진 일’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서로 문화와 언어가 다르지만,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는 생각 하나로 모였습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일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수 행정가
우간다
제가 다녀온 우간다 프로젝트는 남수단 피난민들에게 주로 의료와 식수 공급을 지원했습니다.
긴급 대응 프로젝트이다 보니, 첫 한 달 반 정도는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밥도 랜턴을 켜놓고 먹어야 했습니다. 프로젝트 일원 전부가 함께 쉼 없이 일하고 고생을 하면서 최전방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정윤 약사
우간다
저는 우간다에 머물고 있는 남수단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현지에서 구매하는 약품과 필요한 물품의 품질 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어려움 끝에 현지에서 믿을 수 있는 조달처를 발굴해서 구호 현장에서 동료들이 ‘이제 이런 약이 있어서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루스 콘데 간호사
"사실 예멘에는 콜레라가 퍼질 모든 조건이 충분했습니다."
“첫 번째 환자의 검사 결과가 콜레라 양성으로 나왔을 때, 팀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일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홍역, 백일해도 발병했고 말라리아 유행도 한창이었거든요. 전쟁 속에 부상을 입은 많은 환자들도 치료 중이었습니다.
사실 예멘에는 콜레라가 퍼질 모든 조건이 충분했습니다. 2년 넘게 전쟁이 벌어지면서 의료 체계는 상당 부분 무너졌고, 얼마 남지 않은 의료진은 몇 달째 봉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피난 중인 가난한 사람들은 깨끗한 식수도 거의 구할 수 없고, 식량도 충분치 않고, 이미 다른 여러 질병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처음에 콜레라는 같은 지역에서 온 소수의 환자 사이에서 드문드문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5월 들어 하루 평균 20~30명의 환자들이 찾아왔고, 우리는 인근 학교에 병상 100개의 콜레라 치료센터를 세웠습니다. 6월 후반 들어 아브스 병원에는 콜레라로 의심되는 환자가 매일 400명도 넘게 들어왔습니다. 7월까지 콜레라 발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예멘 전역에서 총 269,000명이 넘습니다.
제때 알맞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콜레라로 인한 사망률은 최대 50%까지 올라갑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24시간 활동하며 사망률을 1~2%로 유지해 왔습니다.
우리가 예멘에서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비극적인 상황이 나타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멘에는 훨씬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인도주의 단체들은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이 위기는 마지막 콜레라 환자가 치료를 받은 뒤에도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